보드게임 산업에서의 슈퍼스타 효과 - 왜 게임이 절판되는가
보드게임 긱에 저번달에 올라온 글인데 보드게임 산업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아서 일부를 요약해보고자 합니다. 특히 요즘 이슈가 되는 테인티드 그레일이 왜 500개 밖에 찍지 못하는가, 그리고 내가 그렇게 구하고 싶은 수많은 게임들이 왜 여전히 품절인가에 대해서 이 글이 어느 정도 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문은 https://boardgamegeek.com/blogpost/94438?commentid=9038810#comment9038810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은 Pandasaurus games(공룡섬, 미니빌의 퍼블리셔)의 공동 소유자인 Nathan McNair가 작성한 글입니다.
회사들이 "인위적인 공급부족"을 일으켜서 시장에 가짜 수요를 만들고, 상품을 얻기 힘들게 만들어서 정상적인 공급이라면 별로 갖고 싶어하지 않을 상품들도 갖고 싶게 만든다는 음모론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건 스포츠 카드 컬렉션이나, MTG 카드 등 사람들의 수집을 통해서 가치가 정해지는 상품에 대해서 실제로 발생하고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레어카드는...몇 장 없을 때 의미가 있는거죠. 쉽게 구할 수 있다면 수집의 욕구가 많이 줄어들것입니다. 하지만 "인위적인 공급부족"의 예시로 가장 유명한 Cabbage Patch Kids, Tickle Me Elmo, Furby, Ocarina of Time, 파파이스 치킨 샌드위치(?) 는 사실 인위적인 공급부족의 문제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들은 모두 예상치 못했던 히트작이었거나, 최소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히트작이어서 생산자들이 만들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던 거죠. 초기의 공급부족은 소비자들이 얼마나 그 상품을 간절히 원하는가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생산자의 착오이고, 그 이후에는 크리스마스가 지날 때까지는 수요를 따라잡지 못해서 계속 그런 상태가 유지됩니다.
Cabbage Patch Kids는 모든 인형이 다 다릅니다 - 키포지도 그렇죠? 이로인해 생산자인 Coleco가 수백만개의 서로 다른 인형을 만들어야하는데, 그들은 그럴 능력이 없었고 화가난 부모들이 쇼핑물 앞에서 인형을 사려고 서로 싸우는 일까지 발생합니다.
이렇듯이 대부분 "인위적인 공급부족"이라고 비난받는 것들은 사실 "인위적인" 공급부족이 아니라 실제로 생산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생기는 실제 공급부족입니다.
하지만 보드게임 산업에서는 공급부족은 문제가 되진 않습니다. 우리 회사가 어떤 게임 10만개를 생산하길 원한다면 3-4달이면 충분히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왜 보드게임은 항상 품절이 되는걸까요?
슈퍼스타 효과는 어떤 상품이 품질이 좋다라고 인지되면 그 품질이 좋은 것 이상으로 훨씬 더 잘 팔린다는 의미입니다. 보드게임을 예로 들어서, 루트가 그해에 나온 다른 비슷한 게임보다 10%정도 더 좋다고 합시다. 그 다른 게임을 루토라고 해보죠. 이 예시에서 루토는 메카닉, 아트, 테마, 가격 면에서 루트랑 거의 비슷하다고 가정합시다. 그냥 루트보다 조금 더 나쁜 게임인거죠.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만약에 수요가 선형적이라면 루토는 루트보다 10%정도 덜 팔려야합니다. 그리고 만약에 소비자들이 추가적인 정보가 없다면 루토도 루트만큼 충분히 잘 팔릴겁니다. 루트보다 10%정도 떨어지는 게임이면 루토도 충분히 좋은 게임이니까요.
문제는 루트가 이미 시장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레딧이나, 긱이나 페이스북을 통해서 소비자들이 루트에 대해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고, 루트가 루토보다 얼마나 좋은 게임인지 이야기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루토도 꽤 좋은 게임이긴 한데...루트보다는 별로인 것 같아"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루트가 얼마나 좋은 게임인지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루트를 플레이하기 시작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왜 모두가 우드랜드의 귀여운 생물들로 전쟁을 하려고 하는지 궁금해서 루트를 삽니다.
그 결과 루토는 루트보다 10% 덜 팔리는게 아니라 거의 팔리지 않을 것입니다. 노동 경제학자 Sherwin Rosen의 슈퍼스타 효과의 공식은 매우 복잡하지만 결과는 똑같습니다. 대부분 루트를 살 것이고 루토를 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단순하죠? 소비자의 지갑에는 한계가 있고, 루트가 더 좋다면 누가 루토를 살까요?
물론 보드게임계에는 루트 외에도 잘 팔리는 게임이 매우 많지만 대부분 서로 다른 수요를 채워주고 있습니다. 메카닉이나 웨이트, 테마가 다른 게임들이죠. 따라서 사이쓰와 공룡섬, 윙스팬, 루트, 정령섬이 모두 공존할 수 있죠. 또한 산토리니, 아줄, 사그라다, 미니빌도 모두 잘 팔립니다. 그들 모두는 서로 다른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기 때문에 각자의 소비자를 찾을 수 있죠.
만약에 "루트랑 아줄 중에 뭐가 더 좋은 게임인가요?"라고 묻는다면 아마도 여러분은 "어...둘은 매우 다른 게임이라서 그건 좀 잘못된 질문이에요. 둘 다 좋은 게임입니다"라고 답할 것입니다. 하지만 아줄과 2018년에 나온 수 많은 입문용게임을 비교한다면 아줄이 당연히 뛰어나겠죠.
게임이 절판되는 이유는 바로 이 슈퍼스타 효과 때문입니다. 모든 게임이 잘 팔릴 수는 없습니다. 루트가 1개 있다면 아마 100개 정도의 잘 안 팔리는 루토가 있을겁니다. 하지만 실제 소비자들이 게임을 사기 전에는 루트와 루토를 구별할 수가 없습니다. 이야기했다시피 루토는 그렇게 나쁜게임이 아니거든요. 아주 좋은게임이에요! 무려 루트의 90% 정도나 한다구요. 그리고 루토의 퍼블리셔는 루트가 나오고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알았다면 퍼블리셔는 무언가 조치를 취하겠죠.
또 다른 문제는 루트조차도 본인이 슈퍼스타가 될지 알 수가 없다는겁니다. Leder Games(루트 퍼블리셔)에는 매우 뛰어난 사람들이 많고 루트가 훌륭한 게임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런 루트 조차도 또 다른 게임의 루토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제 생각에 대부분의 뛰어난 퍼블리셔와 디자이너들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게임을 만들지만 항상 다른 게임이 자신의 게임보다 더 잘 만들어졌거나, 잘 만들어졌다고 대중들에게 인식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보시다시피 퍼블리셔가 매우 열심히 일하고, 게임에 무엇을 넣던지간에 퍼블리셔는 누가 슈퍼스타가 될지 결정할 수 없습니다. 그건 소비자들의 몫이죠. 무엇이 슈퍼스타를 만드는가는 게임플레이와 아트, 가격, 적당한 시점에 적당한 나라에서 출시, 또는 좋은 시기에 나온 리뷰 등등이 조합되서 나타난 결과입니다.
좋은 퍼블리셔는 1개 이상의 대작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퍼블리셔측에서도 대작을 만들기 위해서 해볼만한게 있죠. 적은 갯수의 타이틀을 출시하면서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개발 단계를 좀 더 길게 잡고 아트와 컴포넌트에 더 투자를 많이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 게임을 슈퍼스타로 만들기 위해서 노력할 수 있죠.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누가 슈퍼스타가 될지 고를 수 없습니다. 따라서 퍼블리셔는 게임을 출시할 때 매우 조심을 해야합니다. 실제로 계산을 해보죠.
예를 들어서 게임당 30%의 마진을 남긴다고 가정해봅시다(임의로 정한 숫자지만 실제 평균치와 꽤 비슷합니다). 그렇다면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위해서는 70%의 게임을 팔아야합니다. 계산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고정 비용은 무시하겠습니다 - 따라서 실제 산업에서는 제가 계산하는 것보다 좀 더 상황이 안 좋습니다.
30%를 마진으로 잡았을 때, 1,000개를 생산한다면 700개를 팔아야 손익분기점에 도달하고, 5,000개를 만들면 3,500개, 10,000개를 만들면 7,000개를 팔아야 손익분기점에 도달합니다. 이걸 거꾸로 생각해서, 만약에 제가 3,500개를 팔았는데, 5,000개를 생산했었다면 손익분기점에 도달하지만, 10,000개를 생산했다면 손해가 납니다. 그것도 매우 큰 손해가 일어나죠.
게임 가격을 $50이라고 가정하고 퍼블리셔가 유통사에 정가의 40%에 게임을 판다고 했을 때($20), 3500개를 팔면 $70,000의 매출이 나오고 3500개가 손익분기점이라고 했으므로 5,000개를 만드는 비용이 $70,000이 들 것입니다. 따라서 10,000개를 만들면 $140,000의 지출이 나오죠. 따라서 5,000개를 생산했다면 손익분기점에 도달했겠지만, 10,000개를 만들었다면 $70,000의 손해가 납니다. 게임을 많이 만드는건 그만큼 퍼블리셔에게 엄청난 위험입니다.
만약에 제가 루트를 만들었다면 10,000개 정도는 안전합니다. 아마 100,000개도 안전하겠죠. 하지만 만약에 제 게임이 루토라면? 10,000카피를 찍었다면 회사가 바로 망했을만큼 큰 손해입니다.
자, 그럼 루토가 자신의 루트라는걸 모르고, 루트 또한 자신의 또 다른 게임의 루토라는걸 모르는 상황에서 퍼블리셔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판매자와 유통업자에게 가서 물어보면 되죠. "몇개 필요하신가요?
하지만, 역시나 유통업자나 판매자들도 무엇이 대박을 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유통업자들은 퍼블리셔보다는 전세계에서 어떤 게임들이 나오는지에 대해서 좀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우리 모두는 몇 주 전에 스톤마이어 게임즈에서 테페스트리를 출시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유통업자는 이 소식을 출시되기 5개월 전에 들었다고 합시다. 만약에 제가 유통업자에게 가서 매우 흥분된 표정으로 제가 만든 문명 게임을 보여줬다면 아마 유통업자는 몇 개 안 살겁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테페스트리가 더 잘 팔릴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많은 경우에 유통업자들은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서 그 기간 동안 출시될 게임 중에 어떤 게임이 성공할지 꽤 높은 확률로 예측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죠. 많은 게임들이 유통업자들을 놀라게 하기도 합니다. 유통업자들이 과거에 저희로부터 게임을 덜 사간 경우도 있었고, 더 사간 경우도 있었습니다. 정가의 80% 세일을 계속하는 게임이 있다면 누군가 베팅을 잘못했다고 추측할 수 있죠.
당연한 이야기지만 유통업자들도 위험을 최소화해야합니다. 유통업자들은 보통 정가의 40%에 게임을 사서 정가의 50% 정도에 리테일샵에 팝니다. 실제로는 최소구매수량, 무료배송, 할인등에 의해서 더 복잡해져서 50% 내외로 변하지만 일단은 단순하게 계산해보겠습니다.
만약에 유통업자가 $50게임을 $20불에 샀다면 그들은 이것을 $25에 팔것입니다. 고정비용, 배송비, 마케팅, 직원 월급, 창고 관리비 등을 다 빼고 단순히 생각하면 $50짜리 게임 1개 팔 때마다 $5이 남는거죠.
유통사가 $50게임을 1,000개 샀다고 합시다. 그럼 유통사가 지불한 비용은 $20,000이고 이걸 500개 팔았다면 $12,500, 1,000개 팔았다면 $25,000의 매출이 나옵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유통사의 마진은 더 적기 때문에 게임을 너무 많이 구매했을 때 지는 위험부담이 퍼블리셔보다 더 큽니다.
대신에 유통사들이 퍼블리셔보다 가지는 이점도 있습니다. 잘 안팔리는 게임에 대한 위험 부담을 좀 더 분산시킬 수 있다는 것이죠. 퍼블리셔 입장에서는 Leder Games가 루트를 만들었을 때 루토를 만들고 있었다면 타격이 꽤 큽니다. 하지만 유통사는 루토를 너무 많이 사서 얻은 손해를 루트를 팔면서 어느정도 메꿀 수 있죠.
결론적으로 잘못된 게임을 샀을 경우 유통사가 입는 손해가 훨씬 큽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퍼블리셔보다는 슈퍼스타 위험을 좀 더 분산시킬 수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게임이 루트가 되길 바라면서 5,000개씩 살 수는 없죠.
이런 이유로 퍼블리셔는 문제에 봉착해있고 딱히 해결책도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게임에 대해서 이 게임이 만들어져서 소비자들이 플레이하기 전에는 얼마나 잘 팔릴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저희도 사업을 접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저희는 대부분의 게임을 루토인것처럼 생각하고 생산해야합니다.
만약에 손익분기점에 도달했다면, 좀 더 생산해서 팔아봅니다. 보통 수요와 공급을 대략적으로 알아보는데 6-9개월 정도가 걸리기 때문에 그동안은 게임을 살 수가 없다고 게이머들이 아우성을 치죠. 반면에 저희도 너무 조금만 생산했을 경우에는 다시 생산하는 동안 리테일샵의 저희 자리를 잃거나 게이머들이 더 이상 저희 게임에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도 있죠.
또 다른 문제는 저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희 게임을 원하는지 알 수 없다는 점입니다. 5,000개를 팔았다고 저희가 100,000개를 생산할 수는 없죠. 이 게임의 수요는 6,000개나 10,000개정도였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시간이 지나면서 수요가 더 늘어났을 수도 있죠. 어찌되었든간에 저희가 알 방법이 없습니다.
또한 게임을 재생산하는 동안에도 다른 게임이 치고 나와서 저희 게임을 누를 수도 있다는 위험부담도 있습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분명히 일어났던 일입니다. 초판이 절판이 되서 신이 나서 다음판을 더 찍었더니 그새 새로운 게임이 나와서 저희 게임이 루토가 되어버린거죠. 결론적으로 모두가 망하지 않기 위해서 조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조심하고 있기 때문에 잘 나가는 게임들은 초판 발매이후 6-9개월 동안은 다시 찾기 힘든 것이죠.
역자 - 이 이후는 Pandasaurus games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자 노력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인데 딱히 흥미 있는 내용은 없어서 잘랐습니다. 게임을 더 적게 만들고, 더 열심히 다듬고, 더 좋은 게임을 찾으려고 노력한다고 요약할 수 있겠네요. 몇 가지 재밌는 사실은 미니빌은 무려 5년이나 된 게임인데 2018년보다 2019년에 더 많이 팔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회사에서 보통 초판은 5,000개 정도 찍는다고 하네요.
이걸 우리나라 상황에 비추어보면, 미국 회사보다 더 영세할 가능성이 높은 우리나라 회사들은 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출판 하나하나에 더 조심할 수 밖에 없고 최대한 보수적으로 수치를 잡아서 생산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