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독 합작게임 스파이시 제작과정 2편
1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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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디즈에서 다음주 월요일까지 펀딩중인 스파이시의 제작과정을 기록한 글입니다.
<한국 민화를 채택하기 까지의 시행착오 >
스파이시 게임의 그래픽 컨셉을 잡는 과정에서 수많은 시안들과 피드백이 화상통화, 메일, 메신저를 통해 한국-독일 사이를 오갔습니다.
(독일에서는 원활한 연락을 위해 카카오톡을 다운받았습니다.)
그림 작가님과 의견을 주고받는 시간도 많았습니다.
수많은 논의를 거쳐 그림작가님과 저희가 동의했던 방안이
고추, 고추냉이(와사비), 후추를 각각 원산지 멕시코, 일본, 인도의 특징을 반영한 고양이와 함께 노출하는 것이었습니다.
(엄밀히는 고추냉이와 와사비는 다른 종류의 식물이라고 합니다만, 편의상 한국버전에서는 고추냉이, 외국에서는 Wasabi 로 표기하였습니다.)
그런데 아직 컨셉을 잡은 초안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의인화된 고양이에 국적을 부여한 우리측 제안에 대한 하이델베어측의 반응은 예상 밖으로 부정적이었습니다.(1편 말미의 시안)
독일 측에서는 미처 저희가 예상치 못한 부분을 지적했는데,
여기 등장하는 원산지 국가 사람들 의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거기 묘사된 국가의 사람들 입장에서 자신들의 문화가 이런 식으로 표현되는걸 원하지 않을 가능성 때문 입니다.
유럽인들 사이에서는 다른 국가나 문화를 폄하한다고 느낄 수 있는 표현에 대한 거부감이 우리보다 상대적으로 크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물론 모든 유럽인이 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이미 알다시피 그곳에도 인종차별주의자들, 국수주의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것이 사회적으로 용인 되서는 안된다는 공감대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강력하게 퍼져있다고 생각 합니다. 특히 독일 사회가 이런 문화나 역사적인 공정성에 엄격하다는 인상을 여러번 받았습니다. )
이건 문화나 도덕의 우월성이라기 보다는 감수성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같이 일을 시작한지 2년여가 되면서 여러번 깨달았습니다만,
역사적, 문화적 올바름에 대한 배려는 하이델베어라는 회사의 특징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스파이시의 성공 이후에 , 나중에 Cultural Radiant 시리즈라 불리게 된 아난시, 코요테, 블레이즈 같은 일련의 게임들을 만들게 된 이유가 됐습니다.
보드게임도 결국 사람의 감정을 다루는 매체이고, 그래서 게임을 만드는 사람은 플레이어의 문화적인 감수성에 대해서도 고려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서로다른 문화적인 감수성에 대해 배운 것은 좋은 일이었지만 그림작가님 입장에서는 힘빠지는 일이었는데, 그래픽 컨셉을 여기까지 도출하는 것도 쉬운 과정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가장 쉬운 방법은 그냥 세종류의 스파이시에 숫자를 더하는 것이었겠지만, 아무도 그런 쉬운 해결책을 고려하지는 않았습니다.
고추, 와사비, 후추 이 세가지 수트에 생동감을 부여하려면
‘개성 있는 동물들이 각각의 스파이시와 함께 노출되어야 하고 같은 동물이라도 숫자의 진행에 따라 전체적으로 감정상태가 고양되는 연출’이 따라야 했습니다.
서로 다른 세가지 동물 즉, 고추-돼지, 토끼-와사비, 고양이-후추 를 사용하는 방안도 고려하였습니다만, 이것 역시 모두의 마음에 들진 않았습니다. 벽에 부딪친 느낌이었습니다.
< 초기 안 중 하나 : 와사비 - 토끼>
타문화에 대한 감수성외에 외에 ‘귀엽거나 예쁜 그림’ 에 대한 미묘한 관점 차이도 깨달았습니다.
함께 일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유럽인들은 종종 아시아권의 그림에 대해
‘Overly Cute’ 불필요하게 귀여운 또는 ‘Overyl sexualized’(지나치게 성적인 매력이 강조된) 표현이라 느끼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건 그들이 해당 그림을 어색하게 느끼거나 싫어하게 되는 요인이 됩니다.
우리가 그걸 잘 깨닫지 못하는것은 단지 예의상 그들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을 뿐입니다.
여기에는 양국의 문화적 관습의 차이도 있지만 그와는 다른 여러가지 미묘한 변수가 관련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동그란 얼굴 윤곽과 큰 눈을 가진 아시아권의 캐릭터들은 대부분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 황금기 작품들 에게서 영향 받았습니다.
일본의 문화와 상대적으로 친숙한 프랑스에서는 이런 풍이 거부감없이 받아들여지지만 묘하게도 과거 독일에서는 일본 망가풍의 그래픽은 성인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일본 망가 도입 초창기에 우르츠끼 동자등(일본 촉수물의 고전) 일본의 성인물들이 집중적으로 소개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시대가 변함에 따라 이런 경향도 변화합니다.
나루토나 원피스같은 월드 베스트셀러는 전세계 어디에서나 인기를 얻고 있고 그에 따라 망가풍의 그림에 대한 거부감에도 변화가 왔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모든 문화권에서 보편적으로 사랑받는 그림풍은 많지 않습니다. (그 어려운걸 해내고 있는 곳이 디즈니 정도 겠습니다만.)
당연한 말이지만 세계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사람들은 이런 문화적 차이점에 대한 감수성이 필요합니다.
이건 혼자서 도달하기 어려운 영역입니다.
분명히 귀여운 동물을 묘사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이질감이 느껴지는 그림들은 이런 미묘한 문제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같은 아시아라고 하더라도, 중화권과 일본, 그리고 한국에서 그려진 귀여운 그림들은 조금씩 느낌이 다릅니다.
지리적으로 인접하고 역사적으로 많은 부분을 공유하는 문화임에도 불구하고 한쪽 문화에서는 귀엽고 예쁘게 인식되는 그림이 다른 문화에서는 그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이 받은 문화적인 영향의 결과겠지만
우리가 만드는 것은 생산자가 아닌, 이 세상 어딘가의 소비자를 위한 게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게임 제작자는 그러한 문화적인 차이까지도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건 수많은 경험과 대화 없이는 얻기 힘든 부분입니다.
그리고 이 점이 이번에 다른 국가 기업간의 협업을 통해 배운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라 생각 합니다.
어떻게 하면 개성을 유지하면서 문화적인 갭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때,
그림작가님이 “ 민화풍을 시도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하는 의견을 냈습니다. 민화풍이라면 고양이보다는 호랑이가 어울릴 것이라는 의견과 함께요.
(여기에는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호랑이는 커다란 고양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과연 한국 민화풍의 그들이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것은 다른 문제였지요.
반신반의하며 보낸 민화 풍 샘플에 대한 독일측에서는 뜻밖의 반응을 보내왔습니다.
“정말 멋지다. 바로 이런 시도가 우리가 같이 일을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이러한 반응은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때로는 기괴하게 느껴지기도 했던 창의적인 시도들을 마다하지 않았던 하이델베어사 고유의 문화 때문이라고 생각 합니다.
<민화풍 컨셉 초기 스케치>
제작에는 속도가 붙었지만 단순히 민화풍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습니다. 카드별 감정 표현에 있어서 해결할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스파이시 카드에서 각 호랑이들은 숫자가 높아짐에 따라 감정이 고양된 표현을 합니다.
1번 카드에서 처음 스파이스가 등장하고
2,3,4번 카드 에서는 별 무리없이 스파이스를 집어먹는 모습,
그리고 5,6,7 에서는 매운 스파이스에 뒤늦게 반응하기 시작하는 모습,
8,9,10, 특히 10에서는 감정적으로 폭발하는 모습이 연출됩니다.
이런 감정적인 폭발이 일어나는 부분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숫자가 높아지면서 긴장감이 발생하는 것은 높은 숫자로 올라갈수록 확률적으로 낼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줄어들고 거기에 따라 거짓말을 해야 할 필요성은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맞춰 상대의 거짓말을 잡아낼 수 있는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에 게임 전체의 긴장감은 증가 됩니다.
민화의 그래픽은 본질적으로 정적입니다.
대부분 문방사우나 조충도 등 정물을 소재로 다루는 그림이 많습니다.
기존의 민화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감정의 고양을 표현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고 이 부분에서 기존의 사고를 벗어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이걸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의논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착안한 것이 미국 애니메이션에서 관습적으로 쓰이는 과장된 표현입니다.
Nickelodeon 같은 만화채널이나 예전 클래식 미국 만화(예를 들어 톰과제리)에서는 전기에 감전된다던지 큰 타격을 받았다 던지 할 때 거의 폭력적으로 느껴지는 과잉연출이 있습니다.
이런 과장은 폭력적이긴 하지만, 이미 동서양 공통으로 너무나 익숙해진 것이라 사람들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과장된 표현으로 받아들일 것이라는데 의견을 같이 했습니다.
우리는 김지민 작가님에게 스파이시의 높은 숫자 카드들을
민화의 분위기와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미국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그런 과장된 연출을 그 스타일안에서 표현해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다행히 재능있는 일러스트레이터를 만난 덕에 그런 까다로운 표현을 한국 전통민화의 내부에서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현재 스파이시 카드들은 이런 고민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한국 민화의 스타일로 그려졌지만, 이 그림들은 전통민화의 관습적인 표현과는 크게 다릅니다.
한국에서 출시된 게임중에서도 이미 민화 스타일의 그림을 사용한 경우가 있었던 사실을 돌아보면 스파이시가 단순히 민화풍이라서 사랑받은 것은 아닐것이라 생각 합니다.
이런 고민의 결과로 나온 스파이시의 최종 원화는, 적어도 게임의 개발사 입장에서는 대단히 만족스러웠고,
처음에는 너무 파격적이라 마음속 깊이 불안감이 있었던 저희 개발팀 내에서도 최선을 다했기에 도달할 수 있는 안정감이 느껴졌습니다.
제작 단계가 되자 또 예상하지 못했던 숙제가 주어졌는데,
그건 이번에는 이 게임을 번쩍 번쩍하는 금속느낌나는 게임으로 만들고 싶다는 하이델베어 대표의 제안이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이말을 할 기회가 여러번 있었습니다.>
매직 더 개더링이나 유희왕 같은 카드 게임중 일부에는 카드를 부분적으로 금속 느낌나게 처리한 포일카드란게 존재합니다만,
하이델베어 대표의 제안은 모든 카드가 금속느낌이 나게 하고 색깔을 그 위에 입히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카드가 별로 없는것은 그게 만들기 까다롭고, 잘 만들기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비용도 일반 카드에 비해 배 이상 소요 됩니다.
펀딩 참가자분들 중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 질문을 해주신 분이 계셨는데 이런 게임을 만드는 과정은 미처 예상 못했던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다음 글에는 그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에 대해 이어가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