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보드게임 만드는 이야기 2. 스위트 앤 스파이시 제작과정
스파이시는 원래 고양이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던 게임 이었습니다.
한국민화풍의 호랑이들로 인기를 얻은 스파이시는 사실 원래부터 호랑이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습니다.
스파이시라는 제목이 지어졌지어졌을 때 이미 스파이시는 고양이를 염두에 둔 게임이었습니다.
장난꾸러기 고양이들이 매운걸 먹으며 누가 대장인지 겨룬다는 스토리가 스파이시라는 이름의 시작이었기 때문입니다 일러스트레이터에게도 이런 컨셉의 고양이 그래픽을 요청 했고 시행착오 끝에 스파이시의 원산지 복장과 고양이를 결합한 시안이 나왔습니다.
<스파이시 초기안 : 멕시코, 인도, 일본 풍의 고양이들>
고추는 멕시코와 연결시켜 멕시코 전통모자인 솜브렐로를 쓰도록 했고, 후추는 전세계적으로 후추의 주된공급지 였던 인도 느낌으로, 와사비는 역시 일본 느낌이 나도록 만들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 시안에 대한 반응이 나쁘지 않았지만, 독일 측에서 조심스럽게 난색을 표했습니다.
“멕시코인, 인도인, 일본인의 입장에서 이렇게 자국의 문화가 소비되는 것을 반기지 않을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의견이었습니다.
사실 우리 입장에서 특정 국가를 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습니다만, 만의 하나라도 저기 등장하는 캐릭터의 모사 대상이 나라사람들이 불편해 할 가능성이 있다면 그걸 피해야 한다는 게 독일 측 입장이었습니다. 저희가 독일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느끼는 그들의 디테일에는 게임 시스템이나 만듬새 외에 이런 면도 있습니다.
스파이시란 게임은 유럽과 미국에서 하이델베어의 이름으로 출시되는 게임이니만큼, 저희는 이 게임을 다양한 문화권에서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게임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끼리의 협업은 그래서 문화적인 타협과정이기도 했습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문제가 안되는게 다른 나라에선 문제가 될 수도 있죠. 무언가를 만드는 입장에서는 이런 제약이 족쇄가 될 수도 있지만, 만일 만드는 게임이 다양한 나라에서 사랑받게 하고 싶다면 이런 타협 과정은 당연히 크게 도움이 됩니다.
이에 나라의 특성을 살린 고양이라는 초기안은 드랍 되었습니다.
그 이후 다양한 시도들을 하는 과정에서 뜻밖에도 한국의 민화풍을 반영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스파이시는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한국 사람이니까 아마 저희가 한국 그림을 제안했을거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한국 스타일의 그림을 쓰자는 의견은 독일에서 오히려 먼저 제안한 것이었습니다.
<최종 완성된 스파이시의 모습>
한국 민화풍의 스파이시는 출시 이후 전세계적인 불황에도 불구하고 세계 29개 국에서 20만개가 팔리는 히트작이 되었지만 초기에 시도된 고양이들의 이미지들은 항상 아쉬웠습니다.
처음에 생각했던 귀여운 스파이시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이 불씨가 살아난 것은 다른 나라의 유통 파트너들 덕분이었습니다. 스파이시의 그래픽은 충분이 멋지지만 이 게임이 아이들도 웃으며 할 수 있는 간단한 게임이란 것을 고려하여 조금 더 귀여운 버전을 만들면 어떻겠냐는 제안이 파트너들로부터 이어졌습니다.
힘을 얻은 우리는 결정했습니다. 초기안을 더 밀고나가
“정말 귀여운 고양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게임을 만들어 보자.”
스위트 앤 스파이시 고양이들 의 모델
국가라는 특색을 없앴을 때, 어떤 고양이를 선정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저희는 이전에 다른 게임을 만들면서 이미 똑 같은 고민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스위트 앤 스파이시의 고양이들이 처음 등장한 게임 텐캣츠. 지금은 절판되었습니다.>
제가 보드게임 제작을 다시 시작했던 약 10년 전에 만들었던 텐캣츠라는 게임에는 각각 버찌, 꼬찌, 모찌, 리찌는 이름이 있는 오렌지색, 턱시도 고양이, 샴고양이가 등장합니다. 이 고양이들은 실제 모델이 있습니다. 텐캣츠는 당시 처음 길렀던 고양이를 떠나 보낸 저희 여동생을 위해 여동생네 집에서 사는 실제 고양이들을 주인공으로 만든 게임입니다. 게임의 매뉴얼에도 등장하는 리찌는 저희 집안의 첫번째 고양이이자 가장 먼저 무지개다리를 건넌 고양이이기도 합니다.
스윗앤 스파이시에 등장하는 모든 고양이 일러스트레이션은, 텐캣츠에 등장했던 실제 고양이를 모델로 한 것입니다.
<고양이 캐릭터들의 실제 모델. 왼쪽부터 모찌, 버찌, 리찌. 이 게임의 메인 모델이기도 한 막내 고양이였던 똘똘한 개냥이 버찌는 지금도 건강히 잘 살고 있습니다. >
저희가 고양이를 테마로 게임을 만들때는 단순히 고양이들을 묘사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는 고양이의 측면들을 반영하고 싶었습니다. 그 방법으로 저희가 채택한 방법은 사람들이 재미있어하는 코믹스러운 고양이의 밈을 그래픽에 반영하는 것이었습니다. 스위트 앤 스파이시의 고양이를 그려주신 배윤성 작가님과 함께 사람들이 좋아하고 공유하는 수많은 고양이 밈들을 골라 그 표정과 몸짓을 반영하는 시안을 만들었습니다.
<인터넷 밈들을 반영하는 과정>
자칫 지나치게 유머를 강조하다가 가학적인 모습이 되지 않도록 독일측과 의논하며 지속적인 수정을 거쳤습니다. 그 결과로 귀여운 고양이들이 등장하되 코믹함을 잃지 않는 스위트 앤 스파이시의 그래픽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원작 스파이시보다 더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서, 원작에 있었던 다양한 배리에이션 요소는 최대한 억제하고 그 대신에 조커 사용을 좀더 간단하게 만들어주는 카드를 넣었습니다.
결과는 만족스러웠습니다. 스파이시가 진출한 거의 모든 국가들에서 관심을 보여서 현재 미국, 독일, 일본 에서 출시된 상태입니다.
고양이는 계속 된다. 고양이 세계관의 시작.
스위트앤 스파이시의 좋은 반응은 고양이를 테마로 하는 또다른 게임으로 이어졌습니다.
스위트 앤 스파이시 주인공들이 고스란히 등장하는 새로운 게임 피시 앤 캣츠는 2022년에 독일과 미국에서 먼저 출시되어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올해 여름 한국에서도 출시될 이 게임에는 스위트앤 스파이시 에서 등장한 고양이들이 뿐 아니라, 텐캣츠나 스위트 앤 스파이시에는 등장하지 못했던 다른 고양이들이 등장합니다. 역시 모두 저희 여동생 집에서 살고 있거나 살았던 고양이들 입니다.
<2023년 한국에도 출시될 또다른 고양이 게임, 피시 앤 캣츠>
피시 앤 캣츠는 전작과 달리 한걸음 더 나아가, 한국에서 퍼블리싱 하는 게임을, 하이델베어를 통해 전 세계에서 유통하는 모델입니다. 대만 작가 James Leung 의 아이디어에 한국의 일러스트레이터
가 그림을 그렸습니다.
어시장을 테마로 한 게임을 퍼블리싱 하면서 저희는 이 여섯마리 고양이로 구성된 작은 세계에 추가로 이야기를 부여했습니다. 마음씨 좋은 생선가게 할머니 덕에 생선가게에 모이던 어시장의 길고양이들이, 나이가 들어 가게를 보기 힘들어 하는 할머니를 위해 생선가게를 운영하는 세계입니다.
모든 고양이들은 각자의 개성을 갖고 있습니다. 가능하면 이 이야기를 계속 발전시켜 이 고양이들을 테마로 하는 게임을 계속해서 만들려고 합니다.
10년전에, 사랑받고 살다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고양이를 등장시켰던 텐캣츠라는 게임과, 스파이시의 세계적인 성공이 만나 스위트 앤 스파이시가 만들어 졌고, 그게 귀여운 고양이들이 만드는 작은 세계관을 그 시도는 앞으로 소개될 다른 게임들로 계속 이어질 예정입니다. 작은 시도들이 모여서 일련의 제품들이 만들어지고, 그 게임들이 여러나라에서 사랑 받는 것을 보는 것은 큰 즐거움입니다.
저희 하이델베어에서는 이런 노력을 계속 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하이델베어는 가능하면, 아시아의 재능을 발굴하여 전세계에 소개하는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이미 세상에는 좋은 게임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아무래도 서구위주로 성장해온 보드게임 시장에도 알려지지 않은 문화, 아직 발굴되지 않은재능들이 아직 많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한국에서 많은 재능들을 발견할 수 있기를 희망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