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취향을 버리고 아내의 취향에 맞는 게임을 해보았습니다

케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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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7-27 오후 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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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아이들이 너무 어리고 직업상 집에 늦게 들어오는 일이 잦습니다.

보드게임을 너무 좋아하지만 한 달에 겨우 2~3회 플레이 할까말까 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어떤 게임이 너무 재미있어 보여서 구입해도, 저의 유일한 '상대 플레이어' 역할을 해주는 아내가 즐겁게 반응해주는 게임이 워낙 드물어서 '그냥 다른 취미를 가져야 하나?' 생각을 했었습니다.

아내가 같이 플레이해주기는 하지만, 먼저 하자고는 한번도 얘기를 안 하니까요.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보드게임을 괜히 나 때문에 억지로 같이해주는 건가 싶기도 했구요.

그러던 와중에 우연히 와이프랑 이야기하다가 생각지도 않게 와이프의 보드게임 취향을 듣게 되었습니다.

보드게임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보여서 취향도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그날 아내가 "나는 이런이런 게임이 좋아."라고 말해서 얼마나 충격이었는지 모릅니다.

아내의 취향과 별 상관없는 저의 보드게임들을 보면서 한번 더 충격을 받았었구요ㅠㅠ

그래서 그때 아내의 취향에 대해 들은 것을 가지고 게임들을 추천해달라고 문의게시판에 올렸었습니다.

(여러 게임들을 소개해주시며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 때 추천 받았던 겜 중에 하나가 시즌스였는데, 솔직히 이 겜이 진짜 재미있을지 제 안에 확신이 없었습니다(평소 제 취향이랑 별로 안 맞는 부분도 있었구요)

그런데 마침 그 구하기 힘들다던 '한글화된 시즌스'를 중고로 판매하시는 분이 계셔서 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아내가 또 새 게임이냐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어보였습니다.

그래도 일단 설명해보라는 말에 기뻐서 제 딴에는 열심히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입에는 짜증을 가득 담아서 말했습니다.

"아~ 뭐라하는지 1도 모르겠어ㅡㅡ^"

그러더니 제가 미리 세팅해둔 '초보자 추천카드 9장'을 막 섞더니 카드내용을 읽어보지도 않고 정말 대충 3장씩 나눠서 놓는 것이었습니다.

"아니야. 이 게임은 처음 시작단계 때 어떤 카드를 먼저 사용하고 나중에 사용할지 정하는 게 가장 중요하대."

"아, 몰라. 걍 해!"

어쨌든 같이 해주는게 일단 고마우니까ㅠㅠ 무조건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처음 1년째 동안에는 카드를 겨우 1장 내려놓으며 인상을 팍팍 쓰며
"할 게 없어. 할 게 없어." 라는 말을 계속 중얼댔습니다.

'그러게 잘 몰라도 카드를 좀 읽어보고 배분을 하지~ 으이구!'
이런 말이 입까지 올라왔다가도
"응~ 그래? 이상하다ㅎㅎ;; 룰북에서 추천해주는 초보자덱인데...일단 조금만 더 해보고 그래도 재미 없으면 그만해도 괜찮아^^;;"
겨우겨우 달래가며 어렵고도 힘들게 2년째로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어느샌가 아내의 눈매가 뭔가를 깨달은 듯이 매서워지더니 카드를 매 턴마다 두 세장씩 막 내려놓는 것이었습니다. 1년째 때 뭔지 모르겠다며 카드를 새로 뽑는 액션만 골라하는 바람에 잔뜩 들고 있던 카드들을 2년이 끝나는 시점에서 모두 내려 놓아버렸습니다. 그리고 뭔가 콤보콤보한 느낌으로 점수가 쭉쭉 계속 올라가더니 200점을 거뜬히 넘겨버렸고 남편이를 처참하게 발라버리더군요ㅠ 심지어 카드를 마구 섞어서 랜덤으로 배치했는데...오히려 그게 더 잘 된 일이 되어버리다니 참 신기하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ㅋ

아내가 대만족하며 "우와~ 이 겜 진짜 재밌다^^"라고 반응하는 것이 너무 오랜만이라 저는 승패와 상관없이 기분이 좋았습니다. 오늘밤에도 애기들 재워놓고 시즌스 플레이하기로 아내랑 약속해둔 상태입니다.

확실히 영업할 때는 상대의 취향에 맞는 게임을 잘 알아보고 하는 게 진짜 중요하네요.

'나는 너무 재미있는데 왜 우리 아내는 재미없어 할까?'라고 생각했었던 게 정말 엉뚱한 고민이었네요. 단지 취향에 안 맞았을 뿐이었다는 것을 왜 이제껏 몰랐을까요?

저희집에서 보드게임에 관심을 갖고 구입하는 사람이 저 밖에 없으니까 아무리 와이프가 좋아할만한 게임을 고른다고 해도 일정부분 제 마음에 우선 들어야 구입을 했던 것이 사실인데, 앞으로는 와이프의 취향을 더욱 적극고려해서(제 취향을 좀 버리고ㅠㅠ) 게임들을 영입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난 번에 시즌스 추천해주신 오어사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다른 분들이 알려주신 게임들도 하나하나씩 구해서 시도해보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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