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일 서울 워게임 캠프 후기 - 로마 공화국

예테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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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3 오후 12:38

IP: 21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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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에게는 보드게임을 시작한 이래 꿈이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크로키놀을 사고 말리라...! 하는 것이었는데 (부동산 공간과 돈의 부족함으로 10년 가까이 이루지 못함) 올해 크로키놀이 국내에서 출시되면서(!) 드디어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그 사이에 보드게임 커뮤니티를 돌아다니고 오프라인 모임을 하면서 또 꿈이 생겼습니다. 바로 배틀스타 갤럭티카와 로마 공화국을 구입하는 것이었습니다! 배갤은 여름에 샀지만 로마 공화국은 피를 토할 것 같은 중고가에 차마 손을 대지 못하던 중... 관세를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가격을 드디어 발견하고 교섭하여 구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사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아, 그 동안 미친 듯이 보드게임을 샀던 것은 내 안의 결핍이 채워지지 않아서였구나... (실제로 구매한 이후 어떤 보드게임을 봐도 음~ 재밌겠다~ 이상의 반응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도 잠깐일 수도 있지만요 ㅠ_ㅠ) 그리고 마침내 돌려볼 시간도 하루 났습니다!

오랜만에 나간 워게임 캠프는 서울 회기역 근처에서 진행되었습니다. 다른 테이블에서는 나폴레오닉 워를 돌리셨는데 도착하고 세팅하느라 바빠서 사진도 안 찍어놨군요; 후기는... 따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미안합니다! (..)

많은 분들이 잘 알고 계시겠지만 '로마 공화국'은 공화정 시기의 로마를 배경으로 한 정치 게임입니다. 플레이어는 로마의 당파 중 하나를 거느리고 그 휘하에 소속된 의원들의 영향력을 최대한 올려 종신집정관을 배출하거나, 가장 압도적인 당파가 되거나, 혹은 휘하의 군단을 거느리고 반란군으로 로마를 뒤엎으면 승리합니다. 반대로 로마가 파산하거나, 지배층의 독재에 질린 군중들이 집단으로 봉기하여 로마를 뒤엎거나, 4개 이상의 전쟁을 동시에 겪게 되면 패배합니다.

이 게임의 규칙은 무척 복잡하고 어려운 (+영어판 룰북을 그지같이 써놓은) 것으로 악명이 높지만, 크게 보면 다음 일곱 단계의 반복입니다.

1. 사망단계: 무작위로 사망치트 하나를 뽑아 해당하는 의원이 죽습니다.

2. 수입단계: 로마의 수입 및 지출을 판정하고, 본인이 다스리는 당파에 속한 의원마다 수입을 생성합니다.

3. 포럼단계: 카드를 뽑아 본인에게 특혜가 되는 이권을 가져오고, 다른 의원을 회유해 영입하거나 자신의 수입을 늘려줄 기사를 데려옵니다.

4. 사회단계: 최고직위에 있는 공직자가 사회불안수치를 조정합니다.

5. 원로원단계: 집정관, 감찰관, 총독을 선출하고 로마에 도움이 되는 (혹은 나에게만 도움이 되는) 의안을 발의하고 표결하여 통과시킬 수 있습니다. 상대 의원을 기소하여 영향력을 줄이거나 암살하는 행위도 가능합니다.

6. 전투단계: 원로원단계에 파병했던 군단을 각 전쟁에 투입하여 전투합니다.

7. 혁명단계: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카드를 활성화하거나 교환하고, 전투에서 이긴 개선장군이 반란을 일으킵니다.

게임에서 가장 그림이 만들어지는 (그리고 가장 시간을 많이 잡아먹게 되는) 단계는 원로원단계인데요, 정치 게임이나 마피아 게임 류를 좋아한다면 정말 즐길 수 있는 단계지만 반대로 즐기지 않는다면 상당히 괴로운 시간이기도 합니다. 첫 번째로는 다들 자기 당파의 이권을 우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순순히 나에게 좋은 제안을 해주지 않기 때문이고요, 두 번째로는 의장에 의해 그 턴이 많이 좌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원로원단계는 원칙상 집정관과 감찰관 (+게임 진행에 따라 속주 총독)을 선출하고 나면 어떠한 의안도 의무적으로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극단적으로 카르타고군이 당장 로마 성문 앞에 와있어도 군단 파병 안해도 됩니다) 의장은 발의된 의안의 심사 순서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고, 표결 순서도 마음대로 정할 수 있으며,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의안 두 개가 끝나는 즉시 원로원단계의 종료를 선언해도 됩니다. 이런 의장의 전횡을 막기 위해 호민관 카드가 존재하지만, 덱에 그 카드가 원할 때 있다는 보장은 없지요.

게임은 라크, 아이사, 우호, Lee님과 즐겼습니다. 대부분 롬공을 최소 1번씩은 해본 경험이 있고, 해본 적이 없더라도 장시간 게임 플레이에 익숙한 편이라 플레이가 기대되었네요. 게임 시대는 중기로 선택했는데, 포에니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가 본격적인 사회 모순의 심화로 갈등이 중첩되고 그라쿠스 형제 같은 개혁가들 및 마리우스-술라 등의 야심가들이 등장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게임이 시작되고 처음에는 제 당파의 술피키우스가 임시집정관이 되었습니다. 초기와는 달리 중기에서는 게임 시작시 6개의 속주를 나눠가지게 되는데, 다들 속주에서 이권을 생성해 착복하며 정말 바람직한 공직자의 전형을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처음엔 해먹지 않았지만, 해먹을 게 없는 속주여서 하지 않은 것뿐입니다. 개발시키고 나서는 마음껏 해먹었습니다) 사회단계로 넘어가 국정연설을 했는데, 술피키우스 녀석의 혓바닥은 그리 매끄럽지 못한 모양인지 초장부터 3d6에서 사회불안을 -3 하는 결과가 나왔네요. 군단을 모병할 때도 2배로 징집비용 페널티를 먹는 인력난이 나왔지만 이때까지는 다들 '전쟁도 별로 안 나는 중기인데~ 군단도 이미 6개나 있는데 뭐 괜찮지~' 하며 넘기게 됩니다. 이것은 아주 뼈아픈 방심이었습니다...

첫 턴의 집정관 선거 결과 라크-우호 두 분의 연정이 집정관을 가져갔고 저는 감찰관으로 물러앉았습니다. 제 당파에서 당수는 그라쿠스 형제가 소속되어있는 셈프로니우스 가문의 의원이었는데, 게임이 끝날 때까지 제 손에 그라쿠스 형제는 안 들어와서 좀 아쉬웠습니다. 들고 계신 분이랑 거래를 했어야 하는데 깜빡... 사진을 보면 포에니 전쟁의 영웅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양손인 小 아프리카누스도 보이지요 ㅎㅎ 이 친구도 게임 끝까지 거의 써먹질 못해서 아쉽네요. 군사적 능력치가 좋아서 집정관으로 추천했더니 바로 다들 합심해서 갈리아 키살피나 총독으로 보내버리시더라고요. 속주 총독으로 모은 돈을 들고 화려하게 로마로 귀환해서 정적들을 제거하려 했지만 그 사이에 게임은 끝났습니다 (ㅠㅠ)

집정관의 연설로 사회불안이 오히려 가중치를 먹어 9까지 폭등하고 모병도 금지된 모습입니다. 전 정권(=저임)의 실책에 원인을 찾은 라크님과 현 정권에게 문제가 있다고 한 저의 의견이 대립했는데, 후의 게임 진행을 보면 아무래도 제 쪽이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중간에 의안 방해를 위해 호민관 카드로 거부권을 행사했는데, 암살 시도 2번과 떡값(=뇌물) 공여 시도를 모두 피해가는 무적의 호민관이었습니다. 덕분에 제 의견을 관철시킬 수 있었습니다. 로마의 발전을 위한 방탄정신 잊지 않으리라...

그러나 로마가 언제까지 평화롭기만 하겠습니까? 야만인의 침입으로 인해 최전방 속주의 총독들은 일제히 위기를 맞게 됩니다. 4개 속주 중 3개 속주(라크님, 아이사님, Lee님)에 각각 2개 군단씩을 주둔군으로 파견하자는 의안이 통과됐습니다만 이것 또한 실수였습니다. 걍 총독놈들 개고생하든말든 놔둘 걸... 왜냐면 저 주둔군을 보내서 살아남은 속주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로마는 편성된 정규 군단이 하나도 없는(!) 전대미문의 사태를 맞게 됩니다.

군단이 없는데 시칠리아의 노예 봉기 카드가 깔렸습니다. 이제 전쟁을 맞이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지요 ㅠㅠ

이 와중에 사회불안은 14까지 올라가서 로마가 민중봉기로 뒤집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 됩니다. 이권 나눠먹기에 급급했던 로마 의원들도 기겁하여 초당적인 협력을 천명하게 되고, 그 결과 경기 후원에 돈을 퍼부으면서 간신히 사회불안을 어느 정도 낮춰놓는 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마이너스의 손인 제가 전염병 이벤트카드를 뽑아서 로마 의원을 무려 4명이나 죽여버렸네요... (심지어 제 의원은 없음) 현직 집정관, 전직 집정관 이런 거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전염병으로 쓸어버렸습니다. 사진의 손은 하도 황당해서 치트 사진 찍으려고 세팅하시는 Lee님입니다 ㅠㅠ;

이후 전염병을 한번 더 뽑아 상대 당파 의원들을 또 한번 쓸어버리는 쾌거 (..)를 달성하고.. 정신차려보니 최다 의원 보유자가 되어있어 이대로면 영향력 합산으로 무난하게 승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인력난과 흉조(주사위 '마다' 결과 -1, 이것도 제가 뽑음;)로 인해 로마에 위기가 닥쳐오고, 유구르타 전쟁과 3차 포에니 전쟁이 동시에 터지면서 당장 4개의 전쟁을 맞이하게 되었네요. 위기에 처한 로마는 다시 초당적인 협력으로 아이사님의 의원을 독재관에 임명하여 3면 전쟁으로 이 위기를 헤쳐나가려고 시도합니다. 마지막이 좀 극적이었는데, 3면 전쟁을 주장한 3인의 찬성표가 31표라 반대한 2인의 표인 30표보다 딱 1표 많아서 통과되었네요. 과반수의 무서움...

그러나 3면 전쟁에서 2개 전선은 교착, 1개 전선은 로마의 패배가 나오면서 결국 허망하게 로마가 멸망하게 되었네요. 다들 아쉬워서 혹시 양면 전쟁으로 했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하고 계산을 해봤는데 그렇게 해도 결국 로마가 파산해서 게임이 끝나는 건 똑같더라고요. 흉조 카드가 상당히 무시무시한 카드였습니다. 룰 설명에 대략 40분, 게임 플레이에 4시간 조금 더 걸린 듯 한데 당초 8시간 정도를 각오하고 온 입장에서는 재미는 있었지만 살짝 허탈하기도 하다...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그 허탈함을 제공한 비중의 대다수가 저라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겠죠 (허허)

그 외의 소소한 재미라면 영원히 죽고 또 죽는 파비우스 (저번 게임에서 제가 파비우스로 두 번이나 죽었는데, 이번에도 제가 쓰진 않았으나 자주 죽는 건 변하지 않았습니다), 서로 수입이 많이 나오는 속주 총독으로 자신의 정치인을 보내기 위해 안간힘쓰기, 아까 이야기했듯이 현재 집정관이 사회불안 조정용 대중연설 주사위를 잘 못 던지면 현 집정관을 탓하고 다시 그 현 집정관은 전 집정관을, 전 집정관은 전전 집정관을 탓하는 무책임한 남탓 플레이하기, 군단이 별로 없는 로마를 보고 반란 일으킬 계획 세우기 (게임 끝날 때 두 분이 반란 각을 보고 계셨다고 고백하셨는데 저는 감탄만 나왔습니다...) 등등이 있었습니다.

전날에 규칙 해설서를 상당히 오래 읽고 갔는데 주요공직이나 부패마커 부여하고 떼는 시점을 헷갈린다든가 전쟁으로 들어가는 유지비 계산을 착각했다든가 하는 에러플이 있어서 조금 아쉽기도 했네요. 라크님이 옆에서 많이 도와주셨는데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겠지요... (다짐)

아무튼 같이 게임하시는 분들과 강한 텐션을 (리액션이 크면 클수록 재밌습니다) 유지하실 수 있는 분, 매운 상호작용을 좋아하지만 그러면서 게임은 게임으로 흘려보낼 수 있는 마음가짐의 소유자에게 추천드립니다. 로마 공화국! 같이 하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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