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카페 도전하는 아저씨 이야기(10) 보람찰 때
1)
가게가 인사동 근처에 있다보니 진짜 관광객 외국인 분들도 종종 방문하십니다. 사실 손님이라기보다는 한국의 보드게임카페가 어떤지 궁금해서 구경하러 오시는 분들이 대부분인데요, 쭉 둘러보시고 좋은 컬렉션이다 한 마디씩 하시면 저도 괜히 기분이 좋더라구요 ㅎ
얼마 전엔 독일인 게이머분이 방분했었습니다. 혼자 구경삼아 오신 것 같아서 둘러보시라고 말했더니 혹시 게임을 살 수 있냐고 물어보시더라구요. 미안하지만 판매는 하지 않는다고 말했더니 너무 아쉽다며, 한국에 온 김에 한국 기념이 될만한 보드게임이 있다면 사고 싶은데, 살만한 곳을 못 찾겠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사실.. 솔직히 말했습니다. 한국은 장난감류나 아주 간단한 패밀리게임 빼고 대부분의 전략 보드게임들은 온라인으로만 판매하고 있고, 게다가 우리도 다 당신네 독일 게임을 한다.... 유럽이나 미국 게임을 하지 한국을 기념할만한 게임은 사실... 부끄럽지만 많지 않다라고 말했더니 웃으면서도 아쉬워 하시더라구요.
저도 아쉬워서 뭐 기념으로 챙겨드릴만한 게 없나 해서 고민하다가 마침 생각이 난 게 패치워크 조각보 버전이었습니다. 다행히 버전별로 패치워크는 다 사놔서 조각보 버전은 뜯지 않고 밀봉으로 있었거든요. 우베 게임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국 기념판으로 나온 버전이다. 아마 독일에서도 구하려면 구할 수 있겠지만 한국 온 기념할 수 있게 선물로 주겠다고 하니 계속 돈을 받으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냥 한국 떠올렸을 때 기분 좋은 추억이 됐으면 좋겠다고 하고 기어이 그냥 선물로 드렸습니다. 너무 고맙다고 하셔서 오히려 제가 민망할 정도였네요.
정말 별 거 아니고 사소한 선물이었지만, 독일 돌아가서 친구 게이머들이랑 게임하면서 한국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기분이 되게 좋았다, 이런 스몰토크 소재라도 된다면 참 좋겠어요 ㅎㅎ
2)
알아서 게임을 찾아가는 손님이 아니라면 웬만해선 제가 다 인원과 취향에 따라 추천을 해드리고 설명을 해드리기 때문에 재방문 하시는 손님들은 이전에 어떤 게임을 하셨었는지도 다 기억을 하는 편입니다. 2주 전쯤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손님 넷이 오셔서 게임을 했었는데요, 그때 제가 추천해드린 게임이 비교적 시간도 오래 걸리고 무게가 있는 게임이었는데 너무 너무 재밌게 했다고 하셨었거든요. 그렇게 손님들이 적극적으로 소감을 말해주시면 고마울 정도로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그 손님들 중 한 분이 어제는 남동생, 어머니와 함께 셋이 우리 가게에 다시 방문을 하셨어요. 그때 그 게임 하셨던 분 아니세요? 라고 했더니 오 사장님 기억하시네요, 그때 너무 재밌게 해서 가족들이랑도 하고 싶어서 일부러 왔어요, 라고 하시더라구요. 친구들과 왔다가 다른 친구들과 오시는 손님들은 그래도 왕왕 있지만, 이렇게 어머니까지 모시고 오는 손님은 처음 봤어서 또 느낌이 되게 새롭게 좋더라구요 ㅎ 다행히 동생과 어머니 모두 너무 너무 재밌게 게임해주셔서 따님 손님도 보람있으셨을 것 같고, 저도 저대로 되게 보람찼습니다 ㅎ 나중에 아버지까지 같이 오시면 좋겠다 싶지만 너무 큰 욕심일지도...? ㅎㅎ
3)
네이버맵이나 카카오맵 같은 곳에 리뷰를 써달라는 유도성 이벤트는 전혀 안 하고 있습니다. 친구들이나 지인들에게조차 리뷰 써달라고 한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제 의지와 상관 없이 그래도 오픈 직후에 써준 친구들이 물론 몇 있기는 하죠...ㅎ 근데 굳이 친구들에게나 손님들에게 리뷰 써달라고 안 하는 건 결국 방문 경험에 만족하고 주변에 추천을 하고 싶을 정도라면 그때 알아서 써주지 않을까 하는 순진함? 때문인데요 ㅎㅎ 그래서 이렇게 가게 장사가... 또르르... ^_ㅠ
말하자면 그래서 저희 가게의 모든 리뷰는 자의에 의한 손님들의 찐 리뷰인데요(친구들도 손님들이긴 했으니...), 리뷰로 칭찬 들을 때가 정말 정말 보람찹니다. 네이버 영수증 리뷰는 귀찮아서 정말 안 쓴느 편인데 이 가게는 안 쓸 수가 없어서 귀찮음을 견디고서까지 쓴다는 손님들부터 해서, 제가 정말 신경을 쓰고 있는 부분들을 알아채주시고 그 부분을 칭찬해주시는 분들 보면 정말 피로가 확 사라지는 느낌이 들 정도에요. 같은 캐쥬얼 게임들이라도 매번 해봤던 게임 말고 조금이라도 다른 게임 추천을 하고자 하고, 게임을 설명할 땐 최대한 게임의 테마부터 설명해서 몰입을 조금이라도 더 할 수 있게 유도하고, 에러플은 없는지 옆에서 몰래몰래 지켜봐드리고 이런 점들을 결국 알아보는 손님들이 있더라구요.
리뷰 인증하면 음료수 주는 이벤트라도 해보라고 주변에서 이야기 많이 하는데, 일단은 그냥 순진하게 조금만 더 해보려구요. 근데 하다 하다 진짜 가게 운영이 이렇겐 안 되겠다 싶으면 그때는 어쩔 수 없겠죠...? ^_ㅠ
4)
사실 3분이면 할 수 있는 스플렌더 설명을 스플렌더가 어떤 뜻이냐면 부터 해서 르네상스 이야기에 킵 액션의 목적은 3가지 정도가 있다는 이야기까지 하고 있으니 (진짜 한 번 재봤더니) 11분 가량 걸리는데요, 그러다보니 금토일 근무한 다음 월요일은 항상 목이 쉬어 있기 일쑤입니다. 주말 바쁠 때도 윙스팬 수준까진 설명하고 있다보니 편도도 요즘 들어 엄청 자주 붓고... 어제부턴 다래끼도 나고... 건강은 제가 더 잘 챙겨야하겠지만 ㅎ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플렌더 한 판을 해도 최대의 재미와 몰입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해드리고 싶거든요.
평일엔 아르낙이나 에이언즈엔드 정도는 종종 설명하고 얼마 전엔 다윈도 설명을 했었습니다. 물론 다윈은 이미 게이머인 손님들께 설명한 거긴 했지만, 아르낙이나 에엔 정도는 스듀나 세듀, 도미니언 보다 좀 더 어려운 거 해보고 싶다는 분들께 설명해드릴 수 있는 수준인 것 같아요. 이런 분들은 이제 진짜 보드게이머의 길로 갈 수 있는 분들이 아닐까 싶어요 ㅎㅎ 아르낙을 가르쳐드렸던 손님들은 이런 본격적인/거판한 보드게임은 처음 해봤는데 너무 재밌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평일에 오시면 다른 재미있는 게임들도 얼마든지 소개해드리겠다고 했습니다.
이게 체력적인 부분에서나 가게 운영적인 부분에서나 건강한 것인지 아직까진 모르겠지만, 아직은 가게 운영 초반이니까 당분간은 계속 이렇게 해보려고 합니다. 나중에 정 안 되겠다 싶으면 운영방식을 바꿔야 할 수도 있겠지만, 진짜로 손님들이 윙스팬 알려달라고 할 때 죄송하지만 윙스팬은 설명 안 됩니다, 라고 대답하게 된다면 저 스스로도 되게 슬플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