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더 미스터리의 단서 밸런스에 대한 고민

땡그랑반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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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5-15 오전 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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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머더 미스터리 게임을 커스텀으로 만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자작 크라임씬 (룰에 대한 고찰)

룰과 시스템을 테스트하기 위함이었기 때문에 스토리는 다른 추리 게임의 내용을 조금 변경해서 가볍게 만들어 볼 생각이었습니다.

"스토리가 있으니까 컴포로 구현만하면 되겠지?"라고 쉽게 봤다가 엄청 힘들었었죠.

문제였던 부분은 바로 단서 배치의 '밸런스'였습니다.

머더 미스터리 게임에서 '밸런스'란 무엇인지, 어떤 기준으로 '밸런스'를 잡아야 하는지가 어려웠습니다.

플레이어(소비자)일때는 '밸런스'의 기준이 두루뭉술해도 괜찮았는데

제작하는 입장이 되니 명확한 기준이 필요했습니다.

언젠가는 직접 게임을 만들어보고 싶기 때문에

다른 머더 미스터리 마니아 분들의 기준은 어떻게 되는지 들어보고 싶어서

그 때에 고민했던 내용을 기록하여 남겨 봅니다.

1. 정량적 기준과 정성적 기준

당시에 스스로 밸런스의 기준을 정량적 기준과 정성적 기준으로 분류했었습니다.

영화의 등장인물이라고 치면,

정량적 기준은 출연(씬)의 시간 비중 → "얼마나 출연했는가"

정성적 기준은 출연(씬)의 중요도 비중 → "출연한 씬이 얼마나 중요한 내용이었는가"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더불어

추리 영화에서 단 10초 등장한 인물이 범인이면 불합리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정량적 기준은 해당 인물이 범인인지 아닌지를 스토리 외적인 요소로 판단하게 하고,

범인이라면 영화의 주요 스토리에 녹아들게 되므로

정성적 기준은 해당 인물이 범인인지 스토리 내부에서 판단하게 한다고 봤습니다.

이를 다시 게임의 기준에서 보면,

정량적 밸런스를 위해서는 단서(씬)에서 등장인물의 비중이 비슷해야 하며, 이는 게임의 구성(스토리 외부)에서 챙겨야 하고

정성적 밸런스는 각 단서(씬)의 내용의 중요도와 무거움, 분위기 등이 고르게 분포되어야 하며, 이는 게임의 스토리에서 챙겨야 한다.

즉,

룰과 시스템에서 정량적 밸런스를 맞추고 스토리에서 정성적 밸런스를 맞추는 두가지 작업을 모두 해야

머더 미스터리의 '밸런스'를 챙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렵게 이야기했지만 결국 룰과 시스템을 깔끔하게 만들고, 밀도있고 탄탄한 스토리를 채워야 한다는 내용인데요.

이를 '제작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하다가 다음과 같이 시도해봤습니다.

2. 정량적 밸런스 잡기

정량적 밸런스를 챙기는 것은 '일단 출연 분량만 비슷하게 맞춰주자'고 생각했습니다.

단서 카드를 액셀로 정리하고,

해당 단서 카드로 인해 의심을 받을 등장인물들에 +1점씩 부여했습니다.

저는 이 점수를 [의심 스택]이라고 불렀는데,

각 등장인물의 [의심 스택] 총합이 같도록 세팅하는 겁니다.

이런 방법을 통해 단서의 비중이 극도로 낮거나 높은 캐릭터는 없도록 조정했습니다.

일단 분량 자체는 모두 비슷하니까

"이 캐릭터는 출연이 적네?"같은 기준으로 추리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는 제 착각이었죠.

3. 정성적 밸런스 잡기

영화에서 등장은 많지만 별 중요하지도 않은 개그만 남발하는 캐릭터가 있다고 가정합시다.

진지한 씬이 하나도 없었는데 해당 캐릭터가 범인이라면 관객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겠죠?

그래서 개그 캐릭터가 범인이라는 반전을 주려면 어느 시점부터 갑자기 이미지가 돌변하고 그러잖아요.

마찬가지로 머더 미스터리 게임에서 모든 캐릭터에게 적당히 진지한 단서가 부여되어야 밸런스가 잡힐겁니다.

그런데 그 '적당히 진지한 정도'가 '정성적'인 기준이라 수치화 할 수 없어서 감에 의존해야 했다는 겁니다.

이 밸런스를 잡는 것도 어려운데 어려운 게 또 있었습니다.

묘사의 '노골적인 정도'였습니다.

"캐릭터 A는 피해자가 사라지길 바랐다"는 내용이 꼭 들어가야 하는데

대놓고 표현하면 A가 너무 의심받고

그렇다고 은은하게 표현하자니 플레이어가 눈치를 못채서 너무 어려워질 것 같고...

애초에 어느 정도가 은은하게 표현한건지도 가늠이 안됐습니다.

그래서 제가 사용했던 방법은 제작 시간을 길게 잡는 것이었습니다.

새벽에 쓴 일기를 다음날 낮에 보면 다르게 읽히고, 며칠 뒤에 읽으면 또 다르게 읽히죠?

이런 효과를 노렸습니다.

일단, 스스로 가장 '적당하다'는 수준으로 잡아보고 1~2주 뒤에 다시 읽어봤습니다.

그러면 조금 다르게 와 닿아서 수정하고, 또 1~2주 뒤에 읽고 또 다시 수정하는 것을 반복했습니다.

혼자 작업했기에 이 방법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했죠.

결론적으로 저는 이 정성적 밸런스 잡기에 실패했습니다.

당시 플레이어분들의 피드백에 따르면,

단서를 통해 언급된 빈도는 모두가 비슷했지만 범인역은 단서는 중요해 보이는게 많았고,

범인의 동기를 은은히 표현하는게 중요했는데 너무 티가 나게 묘사한 것 같았다고.. ㅠㅠ

이 때의 실패 경험 후 지금 생각하는 정성적 밸런스를 잡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일단 한명이 대표로 빠르게 초고를 작성 후, 여럿이서 교차 검증하여 수정을 하기"라는 너무나 당연한 방법.

만약 혼자라면 테스트 플레이를 통해 수정하는 것.

이 당연한 방법을 하지 못했던 것은,

정량적 기준만 먼저 맞춰놓고 묘사의 수준과 뉘앙스를 수정하는 것만으로 정성적 밸런스를 잡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창작한 스토리가 아니었다보니 적극적으로 손을 대기 어려웠다는 이유도 있었구요.

4. 결론

이 이후로 머더 미스터리에서 정량적 밸런스를 틈틈이 확인해보고 있습니다.

가끔 '밸런스'가 유독 안 좋은 게임의 단서들을 모두 살펴보면

정량적인 밸런스조차 지켜지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출연 분량이 대놓고 특정 캐릭터에만 쏠리니까 스토리에 상관없이 잉여 용의자와 주력 용의자가 쉽게 구분되는 거죠.

추리 영화에서 배우의 몸값으로 중요 인물인지 아닌지 너무 쉽게 구분되면 흥미가 식듯이,

게임에서 외부 요소로 용의자가 구분되는 것을 좋아할 플레이어는 없습니다.

그래서 머더 미스터리 게임이라면

외부 요소로 범인을 추축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정량적 밸런스를 맞춰주는 것이 최소 조건이고,

긴장감있는 전개를 위해서는 정성적 밸런스까지 까다롭게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컵의 갯수를 동등하게 나눠주어도 (= 정량적 밸런스)

컵마다 담긴 물의 양이 다르다면 (= 정성적 밸런스)

결국 전체적인 비중의 밸런스는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렇게 무식한 방식으로 시도했고 결론적으로 실패했습니다만,

그래도 첫 시도였으니 나쁘지 않은 경험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식으로 게임의 밸런스를 고려하는지 댓글로 남겨주시면 좋겠습니다!

노하우와 아이디어를 교류함으로써 다음에는 더 좋은 제작 방식을 시도해보고 싶네요.

긴 뻘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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